세상의 소음은 늘 나를 향해 달려드는 파도 같았다. 20대 후반, 나는 그 파도에 휩쓸려 정신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 ‘성공의 기준’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밀려왔고, 나는 그것들에 맞춰 몸을 바꾸고 마음을 다잡느라 늘 녹초였다. 출근길 지하철의 빽빽함 속에서, 퇴근 후 쏟아지는 SNS 피드 속에서, 심지어는 친구들과의 시끌벅적한 대화 속에서도 나는 길을 잃은 작은 조각배 같았다.
내 에너지는 늘 바닥이었다.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탔고, 자유는 저 멀리 수평선 너머의 꿈처럼 느껴졌다. 인간관계는 숙제 같았다. '내가 이 정도는 해줘야지', '내가 참아야지' 하는 의무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싫은 소리를 못 해서 끙끙 앓거나, 남들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내 속마음을 꾹꾹 눌러 담기 일쑤였다. 특히 직장 생활은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성과 압박, 미묘한 신경전,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매일 가면을 쓰는 기분이었다. 퇴근 후에도 그 피로감은 가시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거나, 스마트폰 화면 속 화려한 타인의 삶을 부럽게 훔쳐보는 것이 전부였다.
SNS는 또 어떤가. 모두가 완벽한 삶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나는 초라함을 느꼈다. 예쁜 카페, 근사한 여행, 성공적인 커리어, 다정한 연인... 그 속에서 나는 왜 이리도 지쳐 있는지, 왜 이리도 가진 것이 없는지 스스로를 탓했다. 팔로워 수에 신경 쓰고, '좋아요' 개수에 일희일비하며,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숫자로 매기는 함정에 깊이 빠져 있었다.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내 자존감을 맡겨버린 채,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흔들렸다.
특히 연애는 내게 가장 큰 불안 요인이자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집착의 대상이었다. 왜 나는 늘 관계에서 서툴고 상처받을까. 왜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보다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더 끌릴까.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에, 타인에게서 그 결핍을 채우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줄까?', '이 관계가 영원할까?' 하는 불안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갔다. 불필요한 오해와 집착으로 스스로를 괴롭혔고, 결국 관계를 망치고 깊은 고독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도 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길일까? 평생 이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까? 진로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었고, 행동하기보다는 머릿속으로만 수백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시간을 허비했다. 불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이만 들어가는데 이룬 것은 없고, 통장 잔고는 항상 불안했다. 경제적인 자유는커녕 당장의 숨통을 트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 모든 것이 뒤섞여 나는 만성적인 무기력과 피로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강렬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서야 비로소 멈춰 설 수 있었다. 깊은 절망의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진짜 무엇을 원하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이지?', '나는 왜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고 있지?'
그때부터 나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세상의 소란함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했다. 그것은 마치 나만을 위한 은밀한 지침서를 발견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그 지침서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네 감정을 외면하지 마라, 네 에너지를 소중히 지켜라, 네 자유를 무엇과도 바꾸지 마라. 타인의 기대나 시선으로부터 당당히 벗어나 네 기준으로 살아라.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감정 해소'였다.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분노, 슬픔, 불안, 질투 같은 감정들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마치 인격체처럼 내 안에 숨어 있던 그 감정들은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이름을 붙여주고 인정한 순간 힘을 잃어갔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솔직하게 인정했고, 슬플 때는 마음껏 눈물을 흘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불행의 근원이 외부 상황이 아니라, 내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루지 못했던 내면의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정을 해소하는 것은 마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을 입는 것처럼 가볍고 후련한 경험이었다.
다음 단계는 '경계 설정'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필요한 희생과 의무감으로부터 나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절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이 실망할까 봐,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단호함이 필요한 순간'에는 용기를 내어 '아니오'라고 말했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함부로 빼앗으려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관계에서 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는 분명하게 내 입장을 표현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기 시작하자 타인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은 내가 달라진 모습을 이해하고 응원해주었고, 나를 이용하거나 에너지를 빼앗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내 곁을 떠나갔다. 결국 내 곁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관계가 훨씬 가볍고 건강해졌다.
SNS와의 관계도 재정립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위를 멈췄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대신, 내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팔로잉 목록을 정리하고, 나에게 영감을 주거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콘텐츠만 남겼다. 더 나아가 SNS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나 자신을 위한 활동을 했다. 글을 쓰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조용히 산책을 하는 등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타인의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젊음'과 '시간'의 가치를 절실히 깨달았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나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했다. 불필요한 약속이나 활동을 줄이고, 내가 진정으로 성장하고 기쁨을 느끼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내 삶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늘 허덕였던 과거와 달리, 주체적으로 내 시간을 활용하며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경제적인 자유도 결국 시간적인 자유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나 자신'에 대한 태도였다. 이전에는 나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부족하다고 채찍질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실천했다. 내 감정을 존중하고, 내 한계를 인정하고, 작은 성공에도 스스로를 칭찬했다.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강력한 신념이 내 안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타인의 기준이나 기대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자존감이 생겼다. 젊고 예쁘지 않아도, 특별한 성과를 내지 않아도, 그저 '나'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변화들은 처음에는 작고 미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대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내면이 단단해지고 에너지가 넘치자, 삶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들이 신기하게도 내 삶으로 끌려왔다. 마치 운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처럼 느껴졌다. 좋은 사람들이 인연으로 연결되고,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세상은 소란하고, 때로는 피곤하고 고독할 때도 있다.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황들도 마주한다. 하지만 이전처럼 무기력하게 휩쓸리지 않는다.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나를 보호하는 경계를 세우고, 내 에너지와 시간을 지키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나만의 단단한 중심이 생겼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기대에 맞춰 곡예를 하거나, 사회적인 기준에 나를 억지로 구겨 넣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어디에 있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일을 하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보송보송하게 살아남고’ 있다.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내면의 평온과 자유를 지켜내며, 가볍고 당당하게 나만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